MENU

EXHIBITION

독재맞선 잡초, 모래로 그린 벽돌…50년 화업 한곳에

성곡미술관 김강용 회고전 70년대의 시대적 아픔 담아 인간의 존엄성 `풀`로 표현 "풀만 그려 `잔디김`으로 불려" 독창적 소재와 기법 고민하다 모래·접착제로 벽돌그림 완성


`현실+장 78-11`(130×97㎝) [사진 제공 = 성곡미술관]
사진설명`현실+장 78-11`(130×97㎝) [사진 제공 = 성곡미술관]

초록 잎사귀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해 대형 화면에 잔디밭을 일궜다. 1976년부터 화폭에 벽돌을 쌓아온 김강용 작가(70)의 그림 같지 않았다.

서울 성곡미술관 회고전 '극사실적 벽돌'에서 만난 작가는 "20대에 풀을 하도 많이 그려서 별명이 '잔디김'이었다"고 말했다. 백성을 질긴 생명력의 잡초에 비유한 민초(民草)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그는 "19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 풀을 그렸다. 하나하나가 모여 뭔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인이 모여 사회와 국가가 되듯이"라고 설명했다.

벽돌 그림도 그 연장선상이다. 모래 한 알 한 알이 모여 벽돌이 되고, 벽돌이 쌓여 건물이 된다.

"1970년대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담아내고 표현할 지 고민했어요. 개발독재에 반기를 드는 학생 운동에 동참하고자 인간의 존엄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죠. 사회적 현실과 장소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철길, 철조망, 골목길 등 소외된 공간을 주로 담았어요."

`현실+상 1305-1311`(130×162㎝). [사진 제공 = 성곡미술관]
사진설명`현실+상 1305-1311`(130×162㎝). [사진 제공 = 성곡미술관]

정밀한 모사(模寫)로 현실보다 더 리얼한 극사실회화로 시대를 반영했다. 1978년 홍익대 동문인 고영훈, 이석주, 주태석 등과 극사실회화 소그룹 '사실과 현실' 주역으로 활동했다.

젊은 시절 그의 또 다른 고민은 독창적인 소재와 기법이었다. 흙으로 나무를 그리고 모래로 벽돌을 표현하는 실험을 해왔다. 체에 거른 고운 모래를 접착제와 섞어 균일하게 펴바른 벽돌 회화는 전시장 벽에 또 따른 벽을 만든 것처럼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입자와 빛깔이 다른 한강과 동해안, 서해안 모래 채취부터 염분 제거 후 작품 완성까지 조수 없이 혼자 작업한다.



작가는 "벽돌을 그리지 않고, 점선면으로 화면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필요한 만큼 선을 그린 후 점과 같은 모래들을 화면에 붙인다. 이후 그림자를 그려 환영을 만들어 신비감을 더한다.

그는 "착시 효과로 2차원 회화의 새로운 경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작업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실+장 78-1, 1978. Oil on canvas, 122x156cm
사진설명현실+장 78-1, 1978. Oil on canvas, 122x156cm

2010년부터 고려 청자 상감기법을 적용한 것도 일반 회화와 다르다. 모래 바탕을 부분적으로 긁어내고 천연석과 대리석을 갈아만든 색색의 규사로 다시 채워나가며 색채를 대비시켰다. 기하학적 구도로 화면을 분할해 다양한 변주를 펼친다.



색색의 천연 모래 벽돌 회화는 2004년 뉴욕에서 비롯됐다. 홍익대 미대 교수직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뉴욕에 작업실을 얻어 10여년간 작품에만 매달린 결과물이다.

그는 "뉴욕의 벽돌 빌딩 색깔이 모두 다르더라. 그 때부터 모래에 색을 입힌 칼러 벽돌 회화 시대가 시작됐다.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자 대단한 실험이었다"고 했다.

화업 50년을 총정리한 이번 회고전은 공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벽돌 회화의 출발점부터 현재까지 190여점을 펼쳤다. 벽면수행하듯이 혼신을 다해 벽돌을 쌓아온 작품 세계에 경외감이 든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현실+장 75-1, 1975. Oil on canvas, 155x115cm
사진설명현실+장 75-1, 1975. Oil on canvas, 155x115cm

[전지현 기자]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0/08/835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