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U PAUSE
Axel Krause 악셀 크라우제
2024-07-04 ~ 2024-08-01
■ 전시개요
전시 기간: 2024. 7.4(목) – 8.1(목)
전시 행사: 7.4(목) 오프닝 리셉션 5PM , 6.28(금)-7.3(수) 프리뷰
전 시 명: 악셀 크라우제 개인전 <BLAU PAUSE> Axel Krause Solo Exhibition
장 소: Gallery LVS (갤러리 엘비스)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27길 33 (신사동, 쟈스미빌딩 B1)
Opening Hour 9:00 – 18:00 (Mon-Fri) 10:00-17:00 (Sat)
전시문의 : T. 02-3443-7475 E. info@gallerylvs.org
보도자료 : www.webhard.co.kr ID: espacesol PW: g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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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LVS가 독일 화가 악셀 크라우제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악셀 크라우제는 독일 통일 전후 긴장이 고조된 사회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 라이프히치 화파 (New Leipzig School)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네오 라우흐,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마티아스 와이셔 등과 동시대 작가로 여겨지며, 기존 화파에서 더 나아가 정제된 색채와 사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장면을 내러티브로 전개한다. 본 전시는 7년만에 돌아오는 네번째 한국 전시로 2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악셀 크라우제는 1958년 동독 할레에서 태어나 기술공, 군인, 백화점 데코레이터, 라이프치히 오페라 회화실의 연극 화가 등 다양한 직업을 수행하며 청년기를 보냈다. 1981년에 본격적으로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폴커 슈텔츠만, 아르노 링크와 같은 라이프치히 화파 2세대를 사사했다. 악셀은 동독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동서 분단으로 인한 경제 쇠퇴와 시민들의 파산, 노동자 파업, 베를린 장벽까지 정치적 억압과 불황이 만연한 감시체제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했다. 1980년대 라이프치히 화파의 본고장인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하며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혼돈의 분위기 속에서 자유와 쾌락을 갈망하던 당시 청년들의 야망과도 같은 대형 포맷의 회화를 제작했다. 억압받고 제약적인 사회의 폐쇄적인 면모를 회화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악셀은 전에 느낄 수 없었던 기쁨과 해방감을 느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내면의 예술적인 힘에 동화되었고, 고통스러운 현 상황을 초월하는 거대하고 긍정적인 활력을 예술에서 발견했다.
악셀 크라우제는 동문 네오 라우흐와 동시 작업으로 불안하고 혼란한 동독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회화를 제작하기도했다. 이 작품은 1985년도 당시 창문 표면의 소음을 주제로, 훈련캠프에 집합된 무력한 위치의 동독 청년들의 활력을 거대한 고치에 비유하여 블랙 코미디식으로 표현했다. 현재까지도 창은 절반 이상의 작품에 묘사되어 감상자가 주시할 중요한 회화 장치로 보인다. 안팎 즉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문이자, 양방향의 관찰자가 존재하며, 상자처럼 막힌 동독 감시사회를 뚫는 해방구, 이상향으로 이끄는 통로 등 경험에 입각하여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장치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 건설 발표 이후 많은 동베를린 시민들이 경계선 지역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려 서베를린으로 탈출한 역사적 사례도 있기 때문에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기도 한 창문은 회화적 세계관과 현실을 관통하는 중요한 매개로 살펴볼 수 있다.
이 후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반전되는 분위기에 동조하여 악셀은 갑갑한 사회를 표방했던 매개인 고치 대신, 모네의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를 재구성하여 젊은 연인과 테라스, 바다를 그린 작품을 발표했다. 끝을 알 수 없던 분단 사회가 예상치 못한 순간 막을 내림으로써 찾아오는 심리적 변화를 표현했고, 마치 길을 잃고 갈래길의 낯선 이정표를 바라보는 막막하고 경직된 마음과 옛 기억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는 두 감정을 담아냈다. 이 작품으로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한동안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테라스는 악셀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로 등장인물이 그리움 혹은 희망을 품어 먼 곳을 바라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 지 알 수 없으나 보다 나은 미래와 행복이 있으리라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타인을 관찰할 수도 있는 성찰의 공간으로 해석한다.
악셀 크라우제의 화폭 속 다양한 장소에 감상자가 개입하는 것도 미묘한 재미를 더한다. 주로 테라스, 수영장, 잠수함, 비행선, 격납고를 연상시키는 작업장, 병원, 주방 등이 배경이 된다. 욕실 또한 자주 사용하는 소재다. 1950년대 가정에 많이 보급된 가구들로 이루어진 간결하고 실용적이며 원색적인 인테리어는 악셀이 유년기를 보냈던 집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거주지인 할레, 라이프치히와 가까운 바이마르에서 시작되어 독일 현대 디자인을 이끈 바우하우스 인테리어가 다양한 공간에 스며 있고 과거와 현재가 혼합되어 타임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처럼 표현되었다. 등장인물들은 평소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의사와 간호사, 신부, 미용사, 제빵사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묘사된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성향이 드러나는 비연계적인 사물 간의 배치, 다소 암담하고 우울해보이는 시대 정신, 원색과 톤의 대비가 주는 첫인상은 기묘하고 낯선 감정에서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요소들은 어떤 이성적 연관성도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꿈처럼 일어나는 내면의 예측불가한 생각, 무작위로 펼쳐지는 관념들을 조각보처럼 엮어 하나의 시각적인 장면으로 가시화된다. 어떤 작품은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더욱 현실과 가까운 세밀한 인물의 표정을 통해 비현실적인 배경 속에서도 기시감을 준다. 불완전하고 통제적인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과 감정으로 성장한 악셀 크라우제의 정체성을 떠올려보면 막연하게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이 결국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각난 파편들이 물을 만나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듯이, 부분적인 이미지들의 흐름은 하나의 화면과 각 개인의 경계를 허물어 감각의 소통에 도달하게 한다. 이 것에 대해 악셀은 ‘그림에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주제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고로 당신은 주제의 전달자입니다.’ 라고 말한다.
전시명 ‘BLAU PAUSE’는 독일어로 청사진을 뜻하며, 작품명으로 쓰였다. 악셀은 이 것을 직역한 표현도 함께 사용하여 밤과 우울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색(Blau), 그리고 일시 중지 상태, 휴식을 뜻하는 멈춤(Pause)으로도 주제를 설명한다. 내면에 존재하는 분리되어 숨겨진 이미지들을 찾고 그것을 서로 맞추어 한 캔버스에 그리는 과정을 우울함과 멈춤의 순간으로 표현한다. ‘BLAU PAUSE’ 는 직관적인 대비로 이루어진 화면이다. 원시적이고 적나라한 나신의 남녀와 단정하고 공적이며 현대적인 차림새의 여성, 서로 비례하지 않는 인물의 크기, 화면을 가득 채우는 분홍빛 공간과 거울에만 있는 푸른 벽의 단절감, 상반된 두 세계가 공존하고 감상자는 여성과 같은 방향으로 거울을 보며 이 사실을 깨닫는다. 존재하는 것의 부피만큼 바닥에 그림자가 드리워지지만, 그곳에는 푸른 벽만 없다. 청사진은 단어 뜻 그대로 푸른 화면, 즉 거울에 비친 모습이 될 수도 있지만 감상자가 개입한 분홍색 화면일 수도 있으며 두 세계 모두 해당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모든 인물이 그러하듯 시선이 오른쪽 한 방향으로 흐름을 인지한다.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이 청사진인지, 절대적으로 단절된 거울 속이 청사진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자신이 주제의 전달자가 되어 무엇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던져지고, 우리는 과거와 현재 혹은 이상과 현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대비되는 화면을 통해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싶은 지에 대해 끝없는 고찰을 이어간다.
갤러리 LVS ∙ 이유진
Gallery LVS is holding a solo exhibition by German artist Axel Krause. Axel Krause is one of the artists representing the New Leipzig School, which was born under the influence of the tense society before and after German reunification, along with Neo Rauch, Christoph Ruckhäberle, and Matthias Weischer. They are based on previous Leipzig School, but depict refined colors and realistic and surreal scenes in a narrative format. This exhibition is the fourth exhibition in Korea to return after 7 years and presents about 20 works.
Axel Krause was born in Halle, East Germany, in 1958, and spent his youth working in various occupations, including as a technician, soldier, department store decorator, and Leipzig Opera room painter. He majored in painting at the Academy of Fine Arts Leipzig in 1981 and studied with second-generation Leipzig painters such as Volker Steltzmann and Arno Rink. Axel spent his childhood in East Germany, growing up and living in a surveillance society where political oppression and recession were rampant, including economic decline due to the division of East and West, citizen bankruptcies, worker strikes, and the Berlin Wall. In the 1980s, while studying at the Academy of Fine Arts Leipzig, the home of the Leipzig School, he painted paintings composed of several parts. This is a large-format painting that captures the ambitions of young people who longed for freedom and pleasure in an atmosphere of chaos. Axel assimilated the inner power of art and found in art a great positive vitality that transcended his painful current situation.
After this, the Berlin Wall fell in 1990 and the atmosphere in Germany took a turn. Axel reconstructed Monet’s ‘Garden at Sainte-Adresseand’ presented a work depicting a young lover, a terrace, and the sea. It was a work that expressed the psychological changes that come when a divided society with no known end comes to an unexpected end. It captures the two emotions that intersect: a feeling of despair and stiffness as if one is lost and looking at an unfamiliar signpost on a fork in the road, longing for old memories, and excitement for the future. For this work, he received a scholarship in the USA and worked for a while in Columbus, Ohio. The terrace is a place that frequently appears in Axel's paintings, and is also a place where the characters look into the distance with longing or hope. Although we cannot know what lies beyond the horizon, we interpret it as a space of reflection where we can look back on ourselves and observe others, hoping for a better future and happiness.
It is also a subtle pleasure that viewers can visit various places in Axel Krause's paintings. These places are mainly terraces, swimming pools, submarines, airships, workshops reminiscent of hangars, hospitals, kitchens and bathrooms. The simple, practical, and primary-colored interior, made up of furniture widely used in homes in the 1950s, was influenced by the house where Axel spent his childhood. This reminds of Bauhaus style. The Bauhaus interior, which started in Weimar, close to Halle and Leipzig, and led German modern design, permeates various spaces, mixing past and present, and is expressed as a virtual space with no timeline. Axel combines characters from various professions, such as doctors, nurses, priests, hairdressers, and bakers, with the background to express the strong impression received from people wearing white gowns.
These paintings show little correlation in the arrangement of objects, a gloomy spirit of the times, and a strange and unfamiliar first impression given by the contrast of colors and tones. He says that all visible elements have no rational connection. Everything is visualized by weaving together the unpredictable inner thoughts and randomly unfolding ideas that occur like a dream, like a patchwork. Some works show realistic human facial expressions blending in with unrealistic backgrounds through hyper-realistic depictions. The images born from the life of Axel, who experienced various experiences and emotions in a controlled society, seem to be vaguely combined, but ultimately flow in one direction. Just as broken pieces move into a single mass when they meet water, the flow of partial images breaks down the boundaries between a screen and each individual, allowing for communication of the senses. Regarding this, Axel said, ‘You can name a picture, but you cannot name a subject. Therefore, you are the bearer of the subject.’
The title ‘BLAU PAUSE’ means blueprint in German and is the name of the work. Axel directly translates this as gloomy blue, and also explains it as Pause of stoppage and rest. The process of finding separate and hidden images inside and putting them together like a puzzle is expressed as a state of depressing pause. ‘BLAU PAUSE’ is a screen with intuitive contrast. The primitive naked people and the neat and modern-looking woman, the out-of-proportion sizes of the figures, and the sense of disconnection between the pink space that fills the screen and the blue wall that exists only in the mirror, show that two conflicting worlds coexist. The viewer naturally realizes this by looking in the mirror in the same direction as the woman. Everything has a shadow, but the blue wall doesn't have one.
BLAU PAUSE, as the word suggests, can be a blue screen, a reflection in a mirror, or a pink screen, or both worlds. However, all the characters' gaze is directed to the right. It is unclear whether the blueprint is in the mirror or where they are standing. There is a story where you become the conveyer of the subject and can interpret it as anything. This screen contrasts the past, present or ideal with reality as clearly as possible, and looking at this makes us endlessly think about where we are and where we want to go.
Gallery LVS ∙ Youjin Karen Lee
작가 노트 中
“화가는 눈앞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도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자기 앞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도 삼가야한다."
Caspar David Friedric의 위 언급과 같은 맥락으로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합니다. 내 안의 세계를 이루는 것들, 예를 들어 기억, 두려움, 소망 및 야망, 신나는 일, 억압, 건설적인 생각, 질서를 사랑하는 일, 터무니없고, 혼란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정보를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부하고 일상적인 이미지, 초현실적이거나 이국적인 이미지를 함께 상상해보세요. 최상의 시나리오는 나와 관람자가 특별하게 연결되는 것, 즉 공명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청사진이라는 용어는 구어적으로 템플릿, 계획 또는 구성을 나타냅니다. 파란색(Blau)에 대한 비유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야행성, 우울함, 우울함, 갈망의 측면으로 설명될 수 있는 반면, 휴식(Pause)은 비활성 상태, 일시 중지 상태로 이해됩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백일몽에 빠져 그리고 싶은 구성을 상상할 때, 내 안에 숨겨진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잠깐의 우울한 순간을 느낍니다. 그 순간의 이미지들의 구성이 캔버스에서 최종 형태, 즉 청사진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모호한 느낌에서 디자인을 거쳐 그림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획부터 구현까지의 긴장감과 함께 특별한 매력을 표현합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에 대한 성취감, 행복을 느낍니다. 이번 전시 <BLAU PAUSE>에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모았습니다. 이미지의 배열은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원칙을 따르며 객관적인 연관성은 없습니다. 작품은 과거에 대한 성찰이자 현재에 대한 주관적인 성찰입니다. 이미지들의 관계성은 원래 내 안에 숨겨져 있었지만 이제는 나와 관람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됩니다. 이 이미지들은 감정과 영혼의 편지이며, 잘 전달된다면 나와 관람자는 친밀하고 유대적인 관계로 연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악셀 크라우제 , 2024
“The painter should not only paint what he sees in front of him, but also what he sees within himself. But if he doesn't see anything within himself, he should also refrain from painting what he sees in front of him." In exactly this sense, formulated by Caspar David Friedrich, I understand what I do: giving myself and others information about the world within me, of memories, fears, wishes and ambitions, exhilarating, oppressive, constructive, order-loving, absurd, confusing and enigmatic. Cast in banal, every day, surreal or exotic images. In the best-case scenario, as an offer to the viewer to create a special type of connection - resonance.
Axel Krause, 2024